위화감

견디기 어려운 위화감이 오랜만에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이 녀석이 또다시 찾아오리라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지만 막상 마주치면 갈피를 잃는다. 마치 강 건너에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기분과도 같았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내 옆에는 쓰다 만 메모장과 굴러다니는 비닐봉지 정도만 있었을 뿐이다. 별 수 없이 고개를 들어 강 건너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인간관계가 … Read more

내게 건네는 사과

지난 1년은 격변의 시기였다. 처음 만난 동네, 처음 만난 직장, 처음 만난 사람들. 그 숱한 처음을 일상으로 만들기 위해 등산하듯 매일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그리고 처음들을 기회로 삼았다. 전부 처음이니까, 기왕 염두에조차 두지 않았던 일도 시작하자는 심산이었다. 뭐, 어떤 것들은 금방 힘에 부쳐 포기했고, 어떤 것들은 그냥저냥 미적지근하게 이졌고, 심지어 어떤 것들은 익숙해지기까지 했다. 대충 반절 … Read more

독거청년

마치 맨 땅에서 잡초가 삐죽 튀어나오듯, 허리 근육에서 시작된 뾰족한 통증은 천천히 온 몸으로 퍼졌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관절이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커다란 어깨, 팔꿈치, 무릎부터 손가락, 발가락 마디까지 온 몸의 관절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느껴졌다. 새해 벽두부터 한 달여의 생활을 돌아보았다. 한 달간 휴식다운 휴식을 누린 적이 없었다. 주중에는 출근과 운동으로 일정이 빼곡했고 주말에는 사람들을 … Read more

마음의 노숙자 (정호승 – 김밥을 먹으며)

집 앞에 기다리던 택배가 왔는데, 그 안에 슬픔이 가득 들어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과연 그 상자를 열어야 할지 의문이 든다. 정호승 시인의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가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필연 시인의 이름 석 자가 아니라 그 깔깔한 느낌의 제목 때문이었다. 누구나 기다리는 택배 속,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슬픔이 들었다. 슬픔이 든 택배 앞에서, 나는 어떤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