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거 하나 없는 막장임에도.
어쩌면 그렇게 우리 맘을 잘 아는지, 편리한 서비스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집니다. 10년 전만 해도 짜장면을 먹으려면 집전화로 주문을 했습니다. 냉장고 옆에 붙은 촌스러운 자석 전단지를 들고 투박한 전화기를 들어 툭툭 번호를 눌렀던 기억이 납니다. 갑자기 메뉴라도 바꿀라 치면 다시 전화를 겁니다. 아이고, 벌써 출발했다네요.
개인적인 이유로 배달 대신 테이크아웃을 선호하지만 제가 유별날 뿐입니다. 배달앱들의 성장은 눈부십니다. 우후죽순 쏟아졌던 배달앱들을 민트색 형제들이 대통일했습니다. 의아하게도 미국 주식에 상장한 어떤 회사는 새벽배송을 필두로 신선식품을 밀고 있습니다. 보라색 무슨 회사는 비교적 값이 나가지만 믿을 수 있는 식재료를 직매입해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혁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반댓면을 들여다 볼까요. 말끔한 장판을 걷어내면 우중충한 콘크리트가 나오듯 그 이면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모두 느끼셨을 거예요. 운전을 하든 길을 걷든 배달 오토바이는 위협적입니다. 위에서 말한 새벽배송차도 정말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달립니다. 신호를 지키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노려보고 보도에 서 있는 사람에게 비키라고 호통을 치는 아이러니한 상황. 정말 나쁜 사람들이군요! 법을 지키는 선량한 시민들을 위협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빨리빨리를 외치며 차 사이로 슉슉 지나다니던 배달 오토바이. 그리고 신호를 무시하며 달리던 배송차량. 조금만 찾아보면 이들의 사고 영상이 적나라하게 나옵니다. 충격적이고 잔인한 장면들도 여과 없이 나옵니다. 꼴 좋다! 통쾌합니다. 그렇게 우리 선량한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던 사람들이 참교육을 당했군요.
기다리던 음식이 시간이 지나도 결코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배송품도 감감 무소식입니다. 편리한 서비스와 기술 발전의 최하층에서 목숨을 걸고 달렸던 이들. 수백 키로그램에서 1톤이 넘는 쇳덩이들이 사고가 나면 사람의 약한 피부와 얇은 골격은 속절없이 허물어집니다. 사고가 났을 경우 쓸리고 찢어져 겉으로 보이는 상처가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보이지 않는 몸 속의 상처들입니다. 깜깜하고 텅 빈 동굴을 소중한 장기들이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수 톤의 충격에 부드러운 장기들은 말 그대로 토마토 주스처럼 으깨집니다. 날씬했던 사람의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릅니다. 복강 내 출혈.
책 ‘골든아워’는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꺼져가는 생명을 소생시키는 기적의 기록들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소장 이국종 교수는 2002년부터 2018년까지 그가 겪었던 중증외상센터의 모습을 적나라하고 드라마틱하게 책에 담아냈습니다. 그럼에도 이국종 교수의 글은 소름돋을 정도로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 절제된 표현 속에는 서슬 퍼런 날이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날카로운 칼은 오로지 세상의 가장 밑바닥인 죽음만을 향해 있습니다. 외압에 벼려지고 실패로 담금질된 이국종 교수의 손 끝에선 오늘도 생명이 되살아납니다.
이국종 교수는 책에서 말했습니다. “내게 오는 중증외상 환자들은 버스나 택시를 운전하거나 오토바이로 배달을 했고,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위험한 일을 했다. … 위험은 부상을 부르고 부상은 생명을 앗아가지만 위험도와 돈벌이는 비례하지 않았다. … 나는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일자리가 없다고 주저앉지 않았다. 험하고 고된 일이라도 하는 쪽을 택했다. … ‘막장’은 병원에도 있었다. 나는 어두침침한 복도를 지나 수술방으로 들어설 때 이곳이 ‘막장’이라 여겼다. … 그곳에서 모두가 희미해지는 숨을 붙들기 위해 핏물을 뒤집어썼고, 생사의 긴 사투 끝에 죽어가던 사람이 돌아왔다. … 나는 그곳에서 병원의 막장뿐만 아니라 세상이 말하는 막장을 자주 마주쳤다.”
아주대에서 걸으면 10분 걸리는 광교신도시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민원이 발생합니다. 왜 병원에 헬기가 다니냐. 헬기 소리가 시끄럽다. 심지어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불만을 제기합니다. 공부에 지장이 된다.
사회 시스템은 쿨합니다. 발전을 위해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거시적 관점을 들이밉니다. 쿨병 걸린 사회는 거시적으로 돌아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를 떠받치는 우리의 인생은 지극히 미시적이며 구체적입니다. 단 한명의 예외도 없습니다. 보행자를 위협하고 신호를 위반하는 나쁜 사람들도, 그리고 집에서 편히 앉아 앱으로 주문을 하고 있는 선량한 사람들도 말이죠.
그 막장 속에 뛰어들어가 생명이라는 탄을 캐고 있는 이국종 교수가 그저 경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