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서 380km 떨어진 지방에서 회사를 다기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었다. 이름을 듣는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테지만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면 아마 모를 곳. 이 동네에서 일을 하게 될 거라곤 추호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의 모든 생활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었고, 그나마 먼 곳에서 살아본 것은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대전에서의 2년이 전부였다. 이후 첫 회사에 취업을 하고 나서도 출장으로 잠깐잠깐 지방에 다녀올 뿐이었다.
인생에 없던 곳, 단 한 명의 지인조차 없던 곳. 이곳에서 정을 붙이기 위한 노력은 이사 초기에도 지금도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적응중이다. 진한 사투리는 아직 어색하게 들리고, 사람들은 내 말투를 어색하게 느낀다. 뭐가 먹고 싶어 찾으면 없고, 처음 접하는 음식이 식탁에 올라 먹어볼 때도 있다. 수도권보다 물가는 비싸지만, 뜬금없이 싼 것이 있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것이 없지만, 고즈넉한 풍경이 자리한다. 이런 대비를 매 순간 느끼는 나는 아직 이방인이다.
이렇듯 멀었던 이동은 생각보다 상당히 단순한 동기와 작은 용기에서 시작되었다. ‘지쳤다, 살고 싶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계기만 있으면 현실의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최근 2년간 배웠다면 배운 점이다. 하지만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고 단순하지 않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새로울 때, 과연 우리는 그 위협적인 새로움을 어떻게 익숙함으로 바꿀 수 있을까. 새로운 것을 먹어 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보고, 새로운 장소에 가서 눈도장을 찍는 것만으로 변화를 익숙함으로 느낄 수 있다면 참 쉬운 삶이겠다.
본가가 하도 멀어서 몇 주간 올라가지 않던 어느 날, 미역줄기 같은 퇴근길에 문득 새큼한 김치찌개가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한결같은 맛으로 끓여 주시던 엄마의 김치찌개. 참치 아니면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간 김치찌개에 엄마가 해 준 따끈한 밥을 먹고 싶었다. 우리가 어디로 이사를 가든, 어떤 집에 살든, 내가 몇 살을 먹었든 똑같이 맛있었던 엄마의 김치찌개. 난 나를 빼고 모든 것이 변한 주변 상황 속에서, 결코 변하지 않던 것을 다시금 원하고 있었다. 내겐 그것이 엄마의 김치찌개였지만 분명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주변의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그 가운데 변치 않는 나의 모습을 찾아내고 지키는 과정. 그 과정이 매 순간 반복되며 새로움이 익숙해지는 것 아닐까.
과연 내가 이곳을 평생 제3의 고향으로 삼아 살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코스트코도 없는 이곳을 벗어나 당장 수도권으로 옮기고 싶다. 그러나 쉽고 당연한 기회에겐 그냥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고 있다. 아직 나이를 덜 먹어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내 무거운 몸뚱아리를 가슴뛰게 할 만한 것이 아니면 엉덩이가 들썩이질 않는다. 그런 내 모습은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도, 대학원을 졸업해 첫 회사에서 구를 때도, 지금 이 곳에서 이방인으로서도 똑같다. 꽤나 고집있게 내 모습을 지키며 주변과 섞이고 있는 걸 보면, 앞으로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