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에세이 – 프로 공감러

프로 공감러.

종종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상담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공감을 잘 한다는 감사한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래서 되짚어보고 싶다. 난 진정으로 상대에게 공감하고 있는 것인가. 난 정말 공감을 잘 하는 것인가. 물론 맘같아선 내가 프로 공감러요! 외치고 싶다. 그러나 양심에 비추어 보면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부족한 나로서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짐작할 수밖에 없다.

난 공감을 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공감인 것인지 그 깊이가 와닿지 않는다. 일단 첫 단추부터 끼워 보자. 누군가를 이해려는 시도야말로 공감의 시작일 것 같다. 공감하고 있다는 건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첫째, 상대방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가능한 것인가. 둘째, 얼만큼 이해해야 잘 이해한 것인가.

그도 나도,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같은 식재료를 써도 요리사마다 전혀 다른 음식이 탄생한다. 그 요리와 같은 맛을 내고 싶다면 조리 과정을 정확히 되짚어야 한다. 레시피를 세세히 기록하지 않는 한 완성된 음식만 들여다본 다음 과정을 알아내기는 어렵다. 비슷한 관점에서, 같은 세상 속에서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라도 그 반응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지구에 있는 70억개의 세상을 되짚어가며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얼만큼 이해해야 하는가.

내가 공감을 잘 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 건, 내가 그를 잘 이해해서가 아닌 것 같다. 웃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내 공감력이 높아보이는 건 나의 상상력 덕분일 가능성이 높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미루어 짐작해’ 가상의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 속 영화를 재생해 보는 것이다. 결국 상대방을 잘 이해한 것이 아니고, 나라면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는 추측을 잘 했달까. 나는 그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만큼 상대방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속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공감 스트레스?

상상력 발휘를 좋아하는 나로선 이해와 공감이 다행히도 재미있는 과정이다. 용기내서 시도했던 일들은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70억개의 세상 중 몇몇 세상을 더 들여다 보아도 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그런 과정에서 “저는 이만큼 공감하기가 어려워요.” 라거나 “누구누구는 이런 공감을 정말 못 해요.” 라는 이야기가 따라오곤 했다.

어찌 되었건 공감이란 일정 부분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하면 조금 더 친밀하고 부드러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뿐이다. 플러스 알파인 것이지, 필수는 아니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할 필요도 없고, 잘좀 하라고 남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심지어 때에 따라선 무공감이 미덕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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