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동 달동네

국사봉 터널
세피아빛 끝자락은
30년 전
겨울이었어

그때 난
엄마 손 잡고
교대서 갈아탄
2호선을 내려
봉천역 1번출구로
올랐어

얼만지 기억조차 안나는
토큰을 엄마는 던져넣고
아들이 좋아하는 창가
뒷문 바로 왼쪽 창가
엄마 무릎에 아들이
앉았어

털털 남부순환로를
기어가던 마을버스가
좌회전을 빙그르 돌면

장엄한 국사봉이
활기차고 풍요로운 도시와
조용하고 단촐한 달동네를
가로질렀어

중턱 그쯤 난
엄마 손 잡고
마을버스 뒷문으로
달동네에 들어섰고

털털 국사봉을
기어오르는 마을버스
뒷통수에 물어봤어

어디서야 넌 돌아오니

오른쪽을 빙그르 돌면
골목길 세 번째 집
곰팡이에 푹 절여진
반지하 우리 집

그때 난
봉천동이 달동네가
반지하가 우리집이
단촐해도
좋았어

주인댁엔 진주
슈퍼엔 은실이
부르면 나왔던 친구들
계단을 오르면 나왔던
국사봉 꼭대기 놀이터

마을버스는
국사봉 꼭대기에서
되돌아갔어

엄마 손 다시 잡고
되돌아가는
그 버스에 올라
그 단촐하게 좋았던
봉천동 달동네에
내리고 싶어

1 thought on “봉천동 달동네”

  1. 그 많던 기억도 추억도 썰물에 휩쓸리듯 떠나보낼수 있음이 우리에겐 새로운 기회인걸까?
    무언가 하나,파도가 칠때마다 그래도 좀더 나은 생이 펼쳐질듯한 착각속에 빙그레 웃게도 되는것 같아. 추억이 바래지면 덧입혀 칠 할 물감을 발견할수도 있을거야.
    끊임없이 그냥 살아 가는것. 되도록이면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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