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버킷리스트가 꼭 필요하냐는 건방진 질문

버킷리스트라는 말은 이제 너무나 흔해졌다. 해가 바뀔 때가 되면 버킷리스트는 어디서나 사람들을 괴롭힌다. 묵은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야 한다고. 나도 그 거대한 흐름에 편승했다. 새해를 맞이하러 추운 새벽 산꼭대기에 올라간 것이다. 산 정상에 위치한 공군부대는 나같은 뭇 시민들을 위해 내부를 개방해 주었다.

부대에 오르는 길은 차가 올라갈 수 있도록 어느 정도 포장이 되어있기 때문에 여타 등산에 비해서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1월 1일 새벽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평소에도 잘 가지 않는 등산로에 들어선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새해 새 해를 보겠다는 목표가 아니면 누구도 하지 않을 일이다. 새벽 공기는 차가워서 눈썹이 얼어붙었고, 새까만 시야때문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등산로 내내 스마트폰의 손전등을 켜고 있어야 했다. 게다가 발가락은 시리다 못해 운동화 외피와 하나가 된 느낌이 들었다.

산꼭대기에 올라 공군부대에 다다랐다. 흔치 않은 민간인을 맞이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스무 서너살 되어보이는 군인’아저씨’들이 입김을 내뿜고 있었다. 아무리 시민들을 위한 복지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며칠 전부터 예행연습을 하고 깊은 새벽부터 손님맞이 준비를 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포장된 가래떡 한 봉지와 격려 인사를 건네는 것 뿐이었다. 부대 안에는 커다란 천막이 여럿 세워져 있었는데, 이미 따뜻한 차와 비롯해 울타리에 매달 소원지를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이 가득했다. 그들 또한 우리보다는 수 시간 먼저 어두운 산길을 올랐을 것이다.

과연 새 해가 그정도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영접해야 할만큼 큰 의미가 있을까. 다시 버킷리스트로 돌아가 보자. 손가락을 아프게 깨물어 보자면 버킷리스트를 세운다고 해서 새해가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태반은 버킷리스트를 세우다가 중도에 포기할 것이다. 그나마 버킷리스트를 빼곡히 만든 사람들 또한 며칠 지나면 그런 버킷리스트를 세웠나 까맣게 잊을 것이다. 버킷리스트를 소중히 간직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데, 그 사람들은 작년에도 버킷리스트를 잘 지켰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꼭 새해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파악하고 실천하는 사람에 가까울 것이다.

30년 넘는 인생사 처음으로 1월 1일 등산을 통해 새 해를 영접하고 온 소감은, 새 해라고 특별하게 여기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 1월 1일 새 해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그건 그냥 내가 갓생을 살고 있노라 자랑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1월 1일의 해든, 4월 17일의 해든, 모두 다 소중하다. 매일의 새 해는 매일의 실천과도 같고, 실천을 하려면 스스로의 욕구를 분명하게 정의하고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새벽부터 일어나 새 해를 보고 새해 맞이 버킷리스트를 세우기보단 잠 한숨 더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 프렌치 토스트 한 조각에 커피, 그리고 말똥한 정신으로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나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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