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친절한 이유

남을 먼저 위하는 친절한 배려는 손해볼 것이 없다. 누군가는 이 말을 보고 ‘퍼주기만 하면 손해보는 것 아니야?’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배려가 오히려 이득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전에는 나도 마찬가지로 친절하면 호구가 되기 십상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여러 경험에 비추어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선한 마음을 기저에 깔고 남을 배려하고자 한다. 그것이 나에게 잘 어울리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선한 배려의 장점 하나를 더 알게 되었다. 바로 옥석을 골라내는데 있어 배려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는 것이다. 배려는 보통 남을 위해 하는 행동인데 오히려 그것이 사람 사이 관계를 판단하는 도구가 된다는 점이 신기해보일 수도 있다.

사람은 매 순간마다 관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다양한 위계를 설정하고 그것을 충분히 활용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선과 급을 딱딱 나누어 행동한다기 보다는 순간마다 발생하는 관계의 높낮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한다고 이해하면 좋다. 그리고 그 위계를 잘 활용하면, 서로 이익을 볼 수 있다. 간단한 예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한다고 해 보자. 사장과 점원은 방문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 친절히 행동할 수 있고, 방문객은 조금 더 맛있는 요리를 제 때에 대접받기 위해 사장과 점원을 살갑게 대할 수 있다. 물론 친절하고 살갑게 행동한다고 매번 방문객이 비싼 요리를 주문하거나 매번 점원이 요리를 빨리 가져다주진 않지만, 대체적으로 그럴 확률을 높이는 것 같다. 그래서 사장과 점원은 잠깐이나마 방문객을 위에 두고, 방문객도 잠깐이나마 사장과 점원을 위에 둔다. 도덕적으로 어긋나지 않는 상호 합의된 위계 설정이라고 봐도 되겠다.

서로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서로 배려한다는 가정, 만약 별다른 물질적 이익이 없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진흙 속 옥석을 거르듯 ‘내 사람’을 거를 때도 배려심이 큰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타인에게 먼저 배려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1. 받은 배려에 감사할 줄 알고, 동등 이하 배려를 베푸는 사람
  2. 받은 배려에 크게 개의치 않고 일관된 사람
  3. 받은 배려로 자신이 우위에 선 줄 아는 사람

답은 나와있다. 정확하게 3번을 거르면 된다. 물론 1번부터 3번까지의 유형은 나름대로 미리 구분지어 놓으면 된다. 처음 만난 3번을 거르면, 또는 기존의 3번을 손절하면, 삶은 더 평온하고 풍성해짐을 느꼈다. 올 들어 곪은 여드름같은 관계를 여럿 정리했다. 모두 구체적 모습은 다르지만 3번 유형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관계 정리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 나는 3번들에게 행하던 배려를 즉시 멈췄다. 그러니 당황한 상대방이 반응을 해왔다. 나는 그 반응에 개의치 않았다.

다만 내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하나 있다. 3번같은 악인들에게 강하게 나갈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선한 쪽에 서있다는 것을 확고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악인들에게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조건 반사같은 강한 반응은 그들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강하게 되돌려주는 것만이 정의구현은 아니다. 슬쩍 옆으로 흘려버리는 여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여유, 상황을 직시하고 상대를 들었다 놨다 하는 여유.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자 내 숙제의 여러 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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