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있는 나주에서 본가가 있는 인천까지 오가기는 마땅찮다. 나주에서 인천으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대, 그나마도 업무시간 중에 있어서 탈 수 없다. 광주 유스퀘어 터미널에서는 한 시간에 한 대씩 버스가 있지만, 나주에서 광주터미널까지 가는데만 버스로 40분이 걸린다. KTX는 어떨까? 나주역이나 광주송정역에서 KTX를 타면 두시간 반 만에 용산역까지 모셔주지만, 거기서 다시 한 시간정도 지하철을 타야만 한다. 광주공항에서 김포까지 비행기를 타도 짐 검사에 탑승대기에 이런저런 부가시간을 더하면 KTX보다 오래 걸린다.
그래서 나는 본가에 올라가는 횟수를 대폭 줄였고, 대중이 접근하기 힘든 대중교통을 이용할 마음도 거의 접었다. 그런데 주말에 본가를 가지 않으면 이곳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다. 나는 나주와 아무 연고도 없다. 미안하게도 나주가 어디쯤 붙어있는 도시인지는 회사를 옮기며 알았고, 내가 구독하는 유튜버의 구독자 수보다 인구가 한참 적은 작은 지방도시라는 것도 그 때야 알았다. 살 거라고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곳에 친구가 있을리 만무했다. 따분한 주말을 그나마 알차게 보내려면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어야만 했고, 이 냉혹한 현실은 진성 집돌이를 바깥으로 나돌아다니게 만들었다.
조금 돌아다니다 보니 나주의 장점, 범위를 조금 넓혀 남부 서해안의 장점을 금세 깨달았다. 정말 신기하게도 남부 서해안의 하늘은 서울에서 보던 하늘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구름의 명암이 강렬해서 마치 손으로 표면을 문지르는 느낌이 날 정도로 입체적인 결이 느껴졌다. 그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더욱 투명하게 반짝거렸고, 마치 일부러 더욱 진한 물감을 풀어놓은 듯 하늘색은 매일 파란빛 빨간빛 보랏빛으로 바뀌었다.
아름다운 하늘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도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한발 더 나아가 그 순간들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맨날 짊어지고 다니는 카메라를 하늘로 치켜올렸다. 찍고 보고 편집하는 과정은 과연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만 했고 항상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노력의 보상은 확실해서, 현실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때마다 나는 소중히 간직했던 하늘색을 다시 꺼내어보곤 했다.
이번주는 연휴여서 차를 가지고 본가에 다녀왔다. 편도 350km라는 거리는 운전하기에 꽤나 벅찬 거리이다. 운전에 환장하는 나도 200km쯤 달리면 지칠 수 밖에 없어서 휴게소에 꼭 들러야 한다. 지금까지 휴게소는 방광이나 비우고 비싼 핫도그나 사먹는 주차장으로 느껴져서 최대한 들르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고맙게도 이 동네 휴게소는 매번 기깔나는 풍경을 선사해 주어서 휴게소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여우비가 태풍처럼 몰아치던 오늘, 휴게소 뒷편의 소공원 너머 잠깐씩 고개를 내미는 파란 하늘 밑에서 빛나는 황금들녘은 말 그대로 넋을 잃게 만들었다.
자연 속에서 감동을 느끼는 사람은 곧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과는 달리, 나는 내가 특별한 힘이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진 않는다. 다만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을 알아채는 내 모습이 참 다행인 것 같다. 우리 삶은 너무 당연해서 새로운 자극 없이는 금세 밋밋해지고 만다. 그래서 자연에 관심을 두는 것은 참 바람직한 일이다. 자연 속에선 작지만 확실한 변화가 매 순간 계속되니 말이다. 말 그대로 하늘이 내게 준 선물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