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기)

나눔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가. 슈퍼히어로가 등장해 빌런들을 처단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나누는 것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냐니. 갑자기 대기업 수장의 판단력이 흐려진 나머지 자신의 재산 절반을 뚝 떼어 빈곤층에게 나누어 준다고 생각해보자. 그래도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을 바꾸려면 대기업 서너 개 정도에서 대량의 기부를 해야 할 것 같다. 아니, 그걸로도 부족할 것 같다.

어린 시절 언젠지 모를 순간부터 나는 나눔이 싫어졌다. 지하철역 계단에서 깡통을 앞에 두고 쪼그려 앉아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불쌍한 줄 알았던 그들이 단지 무능력하기 짝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이상 그들의 깡통에 백 원짜리를 넣자고 엄마를 조르지 않았다. 그리고 악착같이 내 곳간을 쌓아갔다.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마음은 얼어 터진 수도관처럼 질질 새어 나왔다. 부족한 내 곳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마음의 여유를 앗아갔다. 허상처럼 보일 듯 말 듯한 남들의 곳간을 내 것과 비교하면 내 것이 한없이 작아 보여 초초함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양보하면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나눔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 얼토당토않은 말을 믿게 되었다. 나눔이 세상을 바꾸는 과정을 매일 목격하고 매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분야에 대해 배워나가는 과정을 떠올려보자. 어떤 것이든 처음 시작할 때는 작은 것부터 이뤄 나가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작고 귀여운 성공을 통해 조금의 성취감을 얻지만, 그 보잘것없는 성취감은 자양분이 되어 커다란 시도를 향한 자신감을 키워준다.

이는 나눔과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로 보인다. 하지만 별거 아닌 이 아이디어가 나눔과 세상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창조한다. 나처럼 나눔이 어색했던 사람들에게 세상은 너무 큰 무대이다. 커다란 세상을 보고 있으면 뭔가를 나누기도 전에 주눅이 들어버린다. 내가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데 뭘 나누겠단 말인가.

연말이 되면 누군가 익명으로 몇 억을 구세군 냄비에 넣었다거나, 폐지를 주워 모은 몇백만 원을 행정복지센터에 기부했다는  뉴스가 나오곤 한다. 그런 이야기는 여유로운 사람들의 한량 짓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 억하심정은 스스로를 나눌 게 없는  사람으로 옭아맸다. 그런데 과연 뉴스에 나올법한 사연이 있는 나눔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나눔’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얼마 전 바쁜 아침 시간 잠깐 커피를 사 마실 요량으로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는 반투명한 출입문이 있는데 그 문을 사이에 두고 비슷한 거리에서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둘 중 아무나 팔만 뻗으면 문을 열 수 있는 상황. 내가 빨리 들어가려면 재빨리 문을 밀어버리면 되었다. 하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내가 조금 빨리 들어간다고
남보다 조금 앞선다고
같이 사는 세상,
무슨 소용.

그래서 난 왼손으로 문을 잡고 내 쪽으로 당겼다. 그리고 오른손바닥을 위로 해 길을 안내하듯 바깥쪽으로 손짓했다. 먼저 나가라는 배려의 제스처였다. 정확히 눈을 마주치지 않아 그 사람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지만 꾸벅하면서 토도도 달려 나가는 그 사람의 모습에선 나를 향한 고마움이 느껴졌다. 갑자기 척추 중간쯤부터 따뜻한 뿌듯함과 행복감이 밀려 올라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나눈 것이 있긴 했던 건가? 있었다. 다만 신기하게도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이 없었을 뿐. 그저 내가 가진 마음의 여유를 그와 조금 나누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작고 가냘픈 여유가 그의 마음에 가 닿았고, 그는 잠깐이나마 고마움과 기쁨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그의 하루가 조금 더 즐겁게 시작되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아가 그가 자신의 주변에 또다시 약간의 여유를 나누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이 세상 속 더 많은 사람이 그 순환선에 탑승했으면 좋겠다고 꿈꾼다. 굳이 커다랗고 눈에 띄는 물질적인 것일 필요는 없다. 마음속 작은 여유 정도로도 이미, 세상에 행복을 가져오기엔 충분하기 때문이다.

So, just be 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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