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도 너의 하청이다

세상이 나빠서
세상처럼 나빠지려

나쁘게 물어뜯었다
나쁘게도 물어뜯었던 내 수화기

그 너머에선
주눅에 푹 젖은
내가 답변하고 있었다

자기 꼬리를 문 채 무한히 회전하는 우로보로스 문양

1. 우주는 제로섬 게임이다

나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서 도대체 이 어마어마한 우주가 어떻게 지속되는 건지 궁금했다. 나는 별의 탄생과 죽음에 집중해보았다. 작고 힘없는 별은 무기력하게 큰 별을 빙빙 돌다가 결국 잡아먹혀 하나가 되곤 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별이 서로 먹고 먹히는 영겁의 과정은 제로섬 게임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주가 태어난 이래 전체 물질의 양은 바뀐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는 광활한 우주 속 티끌의 티끌보다도 작지만, 의도됐든 아니든 특별한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지구에선 꿈틀대는 생명체들이 생겨났고 진화를 거듭해 가히 별과 같이 눈부신 성과를 이룩한 지적 생명체마저 탄생했다. 하지만 지적 생명체라고 해봤자, 물리법칙에 의해 감정 없이 존재하는 거대한 별과 다를 것은 없었다. 우리는 별에서 태어났기에, 별들이 그랬던 것처럼 먹고 먹히기를 반복하며 제로섬 게임을 했나 보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었고
그것이 바로 약육강식의 법칙이었다.

2. 어떤 회사 이야기

디스플레이 생산장비. 내가 개발했던 것은 이와는 조금 다른 형태이다.

나는 국내 어떤 대기업의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4년 만에 뛰쳐나왔다. ‘과감히 그만뒀다’ 따위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 조직에 녹아들 마음이 없었고, 그 조직은 그런 나를 어떻게 활용할지 몰랐다. 그때의 나는 간신히 살아내는 데 모든 정신을 쏟았기에 거창한 자기 계발을 시도할 여력도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4년간의 회사생활을 통해 내가 얻어낸 것은 나이와 체중을 제외하곤 마땅찮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곳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기여한 것도 미미할 테다. 그 와중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대부분의 업무가 Top-Down 방식으로 간신히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당기순이익이나 매출 성장률 따위로 표시된 예쁜 PPT(장표라고 부른다)는 VIP에게 보고된다. 그 장표 끝에 VIP가 내뱉은 모호한 한 마디는 조직책임자를 거쳐 두세 마디로 조금 구체화된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하기엔 모호한 그 두세 마디는 실무자들에게 뿌려져 수백 장의 마스터플랜으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그 구체화된 실행 양식의 수행 결과는 VIP의 성과가 되거나 실무자의 과오가 된다.

그런 과정을 경험했기에 난 사과 휴대폰에 들어가는 뛰어난 화면과 카메라 그리고 멋들어진 디자인의 가전제품들을 보면 씁쓸함이 느껴진다. 처음 대기업에 입사한 나에게 VIP의 생각과 의도가 잘 전달되었더라면, 아니 최소한 우리 본부와 우리 팀의 1년 치 목표라도 공유된 상태에서 업무가 주어졌다면. 그랬다면 그 회사에 대해 지금 이렇게까지 아쉬운 기억이 남아있진 않을 것 같다.

입사 첫날 파트장과 인사를 나누던 자리에서 그는 대뜸 내게 차량을 구매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통장 잔고가 6자리를 넘어가지 않았던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없는데 어떻게 차를 살 수 있을까요?” 그는 대답했다. “은행 가서 우리 회사 이름 대면 대출 잘해줘.”

우리 조직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출장을 가야만 했고 출장을 위해선 차가 꼭 필요했다. 그래서 파트장은 나 자체보다 나의 기동성에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며칠 동안 선배의 차를 얻어 타고 다녔지만, 그는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기에 마음이 불편했다. 결국 나는 아버지께 부탁해 잠시 동안 아버지의 차를 가지고 매일같이 출장을 다녔다. 파트장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실행력이 좋다며 만족스러워했고 동시에 나는 목구멍 꼭대기에 사직서를 항상 보관해 두었다.

우리는 하청업체와 함께 일을 했다. 하청업체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대형 생산장비의 기구설계 직무로 입사했지만 설계를 거의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생산 장비 설계와 발주와 조립과 세팅은 협력업체가 했고 우리는 그들을 감시하며 그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돈을 깎았다. 우리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협력업체의 영업팀 부장을 불러다 놓고 돈을 깎으라 윽박지르는 것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듯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상황이 마치 매일 튀어나오는 먹바퀴를 맨손으로 터뜨려 잡는 것만큼 역겨웠다.

내가 부탁하면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참다못한 내가 윽박지르면 그들은 역으로 내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일을 했을 뿐인데 역으로 내게 소리를 지르는 그들 때문에 화가 났지만, 그 상황이 그들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돈을 많이 받으면서 일은 적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원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은 우리 회사에 없었다. VIP의 모호한 말을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돈을 깎아서 남은 이익을 수치로 보여주고 싶었고 결국 우리가 고민 없이 선택한 방법은,

갑질이었다.

VIP는 관리자에게
관리자는 실무자에게
실무자는 협력업체에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갑질.

3. 다른 곳에서 생긴 나의 바람

회사를 그만둔 뒤 술을 완전히 끊고 운동을 습관화하며 건강한 일상을 되찾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힘이 생긴 다음엔 할 수 있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댔다. 내 노력이 헛되진 않았는지 결국 어떤 대학의 직원으로 그것도 신입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대학을 공부하는 장소라고만 생각했지 일하는 장소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직업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다가 어느새 4개월이 흘렀다.

일하는 환경이 달라졌다고 해서 갑질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나와 탁월한 연구성과를 낸 콧대 높은 교수들을 상대한다. 그들은 공고한 성벽을 세우고 성 안쪽에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똑똑한 데다 지식을 알아서 지는 법을 잘 모른다. 그 태도에서 비롯되는 자신감 넘치는 갑질은 당하는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다. 그래서 그들의 논리에 잘못 휘말리면 하루를 망치기 십상이다.

하루는 교수의 얼토당토않은 갑질 때문에 마음이 누덕누덕 해져버린 채로 야근을 했다. 갑자기 일전에 하청업체에 갑질했던 일이 떠올라 실소가 나왔다. 어떤 조직에든 서로 다른 형태와 이름으로 갑질이 존재했다. 다른 글에서 말했듯 어디나 똑같다 같은 파렴치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갑과 을의 관계는 어디에나 언제나 존재하기에 우리 모두는 갑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협력업체에 했던 갑질, 교수가 내게 하는 갑질. 그러고 보면 갑질은 어떤 형태로든 돌고 도는 것 같다. 마치 우로보로스처럼.

우리가 나름대로 지적 생명체이고 한술 더 떠 사회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현대인이라면, 자신이 저지른 갑질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물론 남의 감정을 읽지 못하거나 남을 도구처럼 이용하는 병적인 상태의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우리 대부분은 충분히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나와 주변의 상호작용에 대해 끊임없이 점검하고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내 말과 행동 덕에 일은 빨리 진행될지언정 누군가 상처를 입었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이 살려고 일을 하는 것 아닌가. 일을 하려고 사람이 산다는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비롯되는 갑질은 결국 사람을 사람이 아니게 만든다. 갑질하고 있는 나, 갑질 당하고 있는 나 모두 성과와 성공의 도구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나는 갑질은 삼키고 배려를 내보내려 노력하는 중이다. 잘 안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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