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상을 꿈꾼다. 다양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이상에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다. 다만 이상을 향하는 온도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펄펄 끓다 못해 가까이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뜨겁게 이상을 좇고, 누군가는 이상에 대해 차가우리만치 냉소적이기도 하다. 하나 분명한 건 이상을 향한 온도와 상관 없이 우리는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이상을 이뤄내는 것은 요행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난 어렸을 때부터 욕심이 많았다.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그래야 한다고 어디서 배운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친구도 많이 사귀고 공부도 잘 하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한 번은 부반장 선거에서 떨어졌다고 반이 떠나가라 서럽게 울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여운 욕심이었지만, 그 땐 학급 임원 자리가 내게 굉장히 큰 의미였나보다. 나이 지긋하게 인자하셨던 담임선생님께서 그런 마음을 알아주셨는지, 원래 부반장이 전학을 가게 되자 다시 한 번 투표를 해 내게 기회를 주셨다.
학급 임원이라는 목표를 이뤘을 때, 나는 굉장히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은 인생의 아주 잠시만을 스쳐갔을 뿐이다. 조금 나이를 먹고 교복을 입으니 세상에 불만족스러운 것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욕심 많은 내가 그랬을 리가 없다. 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물론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이상인지는 굳이 다 쓰지 않아도 된다. 난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극복하려는 애송이에 가까웠다. 멀고 높은 이상을 세웠기 때문에 현실은 더욱 불만족스러웠다.
물론 그 시기 내가 세운 목표들이 하나같이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도 뻔한 학생이었기에 꽤나 현실적인 목표들을 여럿 가지고 있었고, 그 중 많은 것을 이뤘다. 그렇지만 완전한 이상에 이르지 못했다는 갈증은 내가 이룬 것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어찌나 망각을 잘 하는지,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에 뒷통수를 타고 흐르는 만족감은 그대로 흘러가 사라졌고 다시 나는 현실에서 이상을 바라봤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발견한 바로 그 때, 좌절감이 뜨끔뜨끔 몸과 마음 한 가운데를 화살처럼 뚫고 지나가 구멍을 만든다. 텅 비어버린 그 마음이 결핍이다. 결핍에 놓인 우리는 뜨거웠던 열망과 차가운 좌절의 온도를 비교하며, 시리다 못해 살이 에는 아픔을 느낀다.
오히려 미지근한 사람이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좌절이 아프니까, 건강하게 살기 위해 이상을 꿈꾸면 안 되는 걸까? 아니, 이상을 꿈꾸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타오르는 가슴만 가지고 이상을 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상을 향한 꿈에 물을 주기 전에 지금 자신의 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 쪽으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향하고 있는지. 이와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이상을 향한 길을 개척해야 한다.
지금도 나는 이상이 크다. 글이 술술 써져서 책도 내고 싶고, 멋진 집도 장만하고 싶고, 잘생기고 싶고, 뭐 그렇다. 그런 파라다이스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구름처럼 떠다니는 이상에 박힌 뿌리를 현실의 땅에다 가져오려고 애쓰고 있다. 글을 술술 쓰는 것보다 어렵게 한 글자 한 글자 쓰고, 멋진 집을 당장 장만하는 것보다 월급을 저축하고, 잘생기는 것보다 가꾸려고 노력하고. 하늘로 뒤집어진 화분을 지금 여기에다, 내가 딛고 서있는 현실에 깊고 단단히 세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