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에세이 – 생각의 지평선

쉰다고 하면 집에 틀어박혀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사람을 만나는 게 즐겁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피곤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초면인 사람들과 회식이라도 하는 날이면 집에 돌아와 한숨을 푹 내쉬며 며칠간 약속은 잡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피로는 사람들 앞에서 끊임없이 눈치를 보는 버릇에서 생겨났다.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눈치를 보나 싶겠지만, 나는 사람들을 의심했기에 눈치를 봤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하물며 입을 다물고 있어도 비난받을 수 있다는 의심.

물론 지금은 그 의심이 착각이었던 것을 안다. 그러나 기나긴 자책의 터널에 빠져 있던 나에겐 그 의심이 절대불변의 사실이었다. 난 실제로 있는지도 모를 사람들의 비난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말의 내용은 물론 말투와 표정같은 비언어적 표현까지 파악하려 했다. 자꾸 그런 의심의 착각에 빠졌던 것은,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관계와 현실의 관계가 가진 모습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의 현실 감각은 비교적 낮았었다고 생각하는데, 꿈꾸던 이상이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는 나만의 꽃밭이 들어있었는데 그것과 눈 앞의 현실을 항상 비교했다. 그래서 현실에 대해 불만이 컸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이상향과 현실을 맞춰나가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작업은 다름아닌 운동이었다.

좋은 PT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약 1년에 걸쳐 체계적으로 운동을 배웠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한계치를 몸으로 알아가는 것은 완벽히 현실 그 자체였다. 나는 운동을 통해 현실을 인식함으로써 저 멀리 둥실 떠있는 이상향을 붙잡아올 수 있었다.

아주 우연히 운동이 그런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뒤에는 좀 더 자주, 좀 더 즐겁게 운동을 했다. 달리기도 하고 산에도 오르며 조금씩이나마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트고, 그들도 그저 운동을 하러 온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비난하러 모인 것이 아닌, 나와서 운동하려고 모인 사람들. 그리고 눈앞에 놓인 달리기 트랙과 높은 산의 언덕. 나도 모르는 새에 반복된 ‘현실 인식 운동’은 나를 꽃밭에서 지금 이 자리에 데려다 놓았다.

지금은 알던 사람을 다시금 만나는 것도, 모르는 사람을 새로 만나는 것도 설렌다. 이제는 단순히 눈 앞에 놓인 현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생각을 읽고, 그들의 눈빛을 빌려 내게 없던 새로운 현실을 인식한다. 이제 내게 주어진 새로운 목표는, 다른 사람의 현실을 내 시야로 다시금 바라보는 것이다. 마치 운동이 그랬듯, 아직은 서툴기 그지 없는 시도가 모여 내 생각의 지평선을 더 멀리 가져다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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