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길러 먹기

봄.
파종의 계절.
시청에서 3평짜리 텃밭을 분양한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3평이라니! 그런 코웃음나는 땅을 누구 코에 붙일까 싶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서를 휘갈기고 잊고 있었는데 아뿔싸, 갑자기 시청에서 온 문자는 나의 당첨을 알리고 있었다.

ㅇ..와아…

주 40시간이고 뭐고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바쁜 척 하는 나. 텃밭을 가꾸기 위해 시간을 내는 건 바쁜 척 하든 진짜 바쁘든 어쨌든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 휴식 없는 일정 탓에 남들보다 며칠 늦어서야 텃밭에 처음 방문했다. 세상에나, 내 눈에 들어온 3평은 광활하기 그지없었다.

초보 농부에게는 3평이 아니라 한 뼘도 어렵다는 것을 직접 땅을 파 보고 씨를 뿌리며 깨달았다. 작물마다 파종 시기와 방법이 달랐고 필요한 고랑의 크기도 조금씩 달랐다. 그걸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중구난방으로 파종을 했다. 하나는 싹이 나겠지 싶어 손가락만한 구멍을 판 다음 씨를 들이부었다. 그리고 흙이 찐득한 황토가 될 지경으로 물을 왕창 뿌렸다.

씨앗으로 심은 열무와 모듬 쌈채소, 모종으로 심은 고추, 오이, 토마토, 가지. 아이들을 심어준 이후에도 밭을 수시로 돌봐야 했는데 나는 밭에 가지 못하고 거의 하늘에 빌다시피하며 지냈다. 짬 내서 텃밭을 가꾼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매일을 지내며 광활한 3평을 머릿속에 자주 떠올렸다. 다른 밭에는 작물이 수두룩 빽빽한데 우리 밭에만 아무것도 없는 것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이만큼이 1평 남짓일 듯. 잡초가 무성하지만 쌈채소와 오이.

그렇게 듬성듬성 방문한 텃밭. 정말 천운으로, 사람의 손길 없이도 대부분의 식물이 알아서 잘 자라줬다. 초보자의 행운이라 했던가? 생각보다 열무는 쑥쑥 자랐고 쌈채소는 금세 먹을만 하게 풍성해졌다. 물론 나고 보니 너무 듬성듬성이었지만 그래도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처음 내 손으로 싹틔웠다는 것이 기뻤다.

뒤쪽 팻말 바로 앞 열무가 보인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오이와 토마토였다. 이 아이들은 길쭉길쭉하게 올라가는 아이들이라 성장속도에 맞춰 막대기를 꽂았어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는다고, 이들은 바닥을 기어다니며 잘도 자랐다. 돌보지 않은 것 치고 굉장히 커다란 과실은 덤이었다.

각종 쌈채소도 빼놓을 수 없는 보물이었다. 구매한 씨앗에는 8종류 쌈채소의 씨앗이 섞여 있었는데 그 다양한 쌈채소가 좁은 공간을 비집고 서로 자라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쌈채소는 보기에도 풍성했지만 먹기에도 좋아서, 적당히 솎아주고 난 뒤에는 맛좋은 섬유질을 내게 한가득 선사해 주었다.

매달린 오이 열매(좌), 잔뜩 자란 쌈채소(우)

3평이라 해도 잡초는 3평을 가득 채우고 남을 정도로 자랐다. 단지 우리가 먹지 않기 때문에 잡초일 뿐 그들도 나름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감성적인 생각은 잠깐 접어두고 호미와 삽으로 밭을 뒤집다시피 해서 잡초를 뽑았다. 자주 방문하지 못하니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잡초를 다 뽑고 은은하게 퍼지는 흙내음이 그 피로를 씻어주었다.

잡초를 뽑고

어제는 드디어 오이를 위해 튼튼한 알루미늄 지지대를 박아주었다. 팔뚝만하게 열린 오이가 탐스러웠다. 토마토는 어느새 과실이 매달려 점점 크게 자라나고 있다. 남들보다 늦더라도 초조해하지 말 것, 하늘의 도움으로 맛있는 과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텃밭이 내게 알려준 것이다.

잘 자라고 있는 오이(좌), 열무 한 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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