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용산역에 왔어요.
용산역과 저의 인연은 KTX가 없던 밀레니엄,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용산던전이라고 불리는 전자상가.
그곳에 처음 방문하던 날은 정말 긴장이 되었죠.
꼬맹이였던 저는 아빠 손을 꼭 잡고
용산역 구름다리를 건넜습니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것만 같았던 구름다리였는데,
그 이후로 23년을 건재했습니다.
시간이 아쉽게,
많이 흘렀습니다.
구닥다리 구름다리는
드디어 새단장을 위해
며칠 전부터
철거되기 시작했어요.
이후 대학생이 된 저는
용산역 플랫폼에 익숙해졌어요.
성북구에 있던 학교에서
경기도 남부 집까지 매일 오갔는데,
가끔 하교길이 피곤하면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기차표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수원역까지 무궁화호나 새마을호를 타고
짧은 사치를 누리곤 했어요.
2009년 가을,
용산역은 제게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했습니다.
여의도 불꽃놀이가 막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중간고사 준비를 한답시고
저녁까지 학교서 공부를 한 다음
새마을호를 타고 집에 갈 요량이었죠.
그 날 플랫폼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하늘의 꽃,
한강 위에서 눈에 스며든 불꽃을
잊을 수 없어요.
그렇게 익숙하고 소중했던 용산역은
얼마 전부터 제게 새롭게 다가왔어요.
용산역은 서울역에 이어 명실상부 서울의 관문이자,
호남선과 전라선 열차가 출발하는 거대한 역입니다.
저는 그 본연의 기능을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수도권에서 전라도로 직장을 옮긴 이후로
용산역은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되었습니다.
운전하는 것을 좋아해서
거의 자동차로 본가와 직장을 오갑니다.
하지만 왕복 700km 정도 되는 거리를
매주 왔다갔다 하는 건 굉장히 피곤해요.
그래서 한 달에 한두 번은 기차를 이용합니다.
따뜻한 우리 집으로 가려면,
호남선 KTX의 시종착역인 용산역을 꼭 거쳐야 합니다.
2000년의 용산역 건물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으리으리한 최신식 건물과,
바로 붙어있는 아이파크 몰의
멋진 가게들을 둘러보기 위해
기차시간보다 두 시간 정도 미리 오곤 합니다.
대합실이 잘 내려다보이는 베이커리에 앉아,
맛있는 에스프레소와 빵을 즐기며
기차역에 가득 찬 사람들을
설레는 맘으로 지켜봅니다.
다음에 다시 만날 용산역을 그리며,
다시 만날 한강을 그리며,
눈에 새겨졌던 불꽃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