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은 격변의 시기였다. 처음 만난 동네, 처음 만난 직장, 처음 만난 사람들. 그 숱한 처음을 일상으로 만들기 위해 등산하듯 매일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그리고 처음들을 기회로 삼았다. 전부 처음이니까, 기왕 염두에조차 두지 않았던 일도 시작하자는 심산이었다. 뭐, 어떤 것들은 금방 힘에 부쳐 포기했고, 어떤 것들은 그냥저냥 미적지근하게 이졌고, 심지어 어떤 것들은 익숙해지기까지 했다. 대충 반절 정도의 성공.
그렇게 새로운 것들을 얻어서 기쁘고 행복했다. 거기까지면 다행이었을 테지만 갑자기 오래된 것들이 진절머리나기 시작했다. 케케묵은 과거들을 내 삶에서 도려내고 싶었다. 새로운 것들만 지키고 싶었다.
예전의 기억들이 만든 줄기가 가끔 툭 하고 발에 걸렸다. 그냥 지나치면 될 텐데 나는 그걸 움켜쥔 다음 뿌리까지 뽑아버리려고 했다. 길다란 과거는 끝도 없이 뽑혀나왔다. 과거를 뽑아내자 잠깐 일시정지 되었던 동영상마냥 그 때의 기억이 내 눈과 내 귀에 입체적으로 구체화됐다.
겁이 덜컥 났다.
다시 옛날처럼 돌아가지 말란 법 없잖아.
그래서 나는 나와 나 사이에 놓인 과거의 줄기를 쉬지 않고 뽑아댔고, 그렇게 물러진 땅에 협곡을 파댔다. 더 깊고 더 가파른 협곡이 만들어질수록 과거와 멀어진다는 안도감이 생겼지만, 파헤쳐진 땅은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날이 지날수록 흔들림이 강해져서, 어느새 멀미가 날 지경에 이르렀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과거에게, 나에게 사과하는 중이다. 파헤쳐낸 흙을 얼기설기나마 다시 덮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땅에게 사과하며 과거의 줄기에서 떨어진 씨앗들을 다시 심는 중이다. 거기에 주는 물은 근거 따위 전혀 없는 확신이다. 나는 내게 100점이라는 확신, 살기 위해선 그것이 옳았다는 확신.
그렇게 다시 땅이 굳고 나와 내가 연결되면, 아마 오늘보다 더 단단한 미래가 금세 찾아올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