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왔는가 생각해보면, ‘열심히’에서 막힌다. 참 열심히도 살았다. 그냥 열심히. 주어지는 것에 휩쓸리며 열심히 헤엄쳤다.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파도는 어느 새 가까이 왔고, 익사하지 않으려면 허우적대며 그 파도를 넘겨야 했다.
눈을 뜨니 삶의 파도는 이미 몰아치고 있었다. 내 유년시절의 기억은 3살때부터 시작된다. 2호선 봉천역에서 출발하는 달동네 마을버스가 간신히 닿는 골목길, 네 번째 집의 반지하 단칸방. 거기가 내 기억의 출발점이다. 나는 봉천동 그 집을 포근한 느낌보다는 역경으로 기억하고 있다. 비좁고 무섭고 더러웠던 화장실. 비가 새서 곰팡이가 슨 벽지를 뜯어내던 엄마의 모습. 장농다리 밑에 다리를 집어넣고 엎드려 놀다가 갑자기 손을 짚고 일어나는 바람에 금이 갔던 오른다리. 그렇게 지우고 싶은 기억들로 시작되는 내 삶의 그림.
야속하지만 당연하게도, 아프고 자극적인 것이 더 깊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기억을 물감 삼아 바다의 풍경을 담은 유화로 내 삶을 표현한다면? 내겐 고기를 잡는 풍성한 기쁨보다 시꺼멓고 높게 몰아치는 슬픔의 파도가 가득했다. 그래서 억울했다. 물감을 척 찍어발라야 비로소 그려낼 수 있는 오톨도톨한 슬픔들. 그들을 애써 무시해보려 했다. 고개를 돌려보고 손으로 가려보아도 그 입체적인 파도는 그대로였다.
그래서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살아 무언가를 성취하니 엔돌핀이 나왔다. 엔돌핀은 마치 그 선명한 파도들을 가릴 수 있는 하얀색 물감 같았다. 짙은 파도를 가리기 위해 하얀 물감이 많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더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세게 물감을 쥐어짜낸다고 해서 물감이 끝없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물감이 비었던 것인지 내 아귀힘이 모자랐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수능을 마친 직후 한계가 왔고 결국 몸과 마음에 병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나의 20대 시절은 잃어버린 10년이나 마찬가지다. 몸이 아프니 자신감이 떨어졌다. 낮은 자신감은 자존감마저 깎아갔고 편집증적인 성격까지 더해져 마음마저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니 20대때 으레 겪는 기초적인 사회화 과정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10년이 넘게 걸렸다.
참 다행인 것은 그것을 깨닫고 나니 조금씩 힘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탐닉하던 술을 끊어버리고 조금씩 건강을 챙겨나갔다. 그러니 마음의 근력도 함께 붙어나갔다. 숱한 파도를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파도를 타고 있는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겨났다. 그렇게 매 순간 조금씩 더 강인해지고 싶다. 허우적대는 파도넘기보단 매끈한 파도타기를 할 수 있길. 내 그림에 그런 모습이 그려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