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찾아왔다. 11월 30일 겨울의 초입에. 이름에 걸맞듯 첫 눈에 반할 정도로 아름답길 바랐지만 그 기대와는 반대로 내 첫눈은 초라하리만치 희미했다. 비좁은 사무실의 가장 나쁜 자리, 출입문에 딱 붙은 자리에 앉은 나는 희끄무레한 첫눈의 움직임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아도 하늘은 보이지 않고 장벽같은 이웃 건물만 답답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 속의 답답함 게이지가 차오르다 경계를 넘어서면 나는 벌떡 일어나 사무실 바깥 정원으로 나간다.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심호흡은 필요하기에, 혼자만의 담배타임을 정해두었다. 오크나무색 데크가 깔린 정원은 작지만 나름 알차게 꾸며져 있다. 그럴싸한 벤치도 몇 개 놓여져 있고 계절별로 색이 변하는 다양한 꽃과 나무들도 옹기종기 모여 있다. 관리자가 제대로 풀을 깎지 않아서 며칠 수염을 깎지 못한 내 얼굴처럼 부시시한 잡초가 웃자랄 때도 있지만 그것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운치가 있는 것 같다.
사무실에서 오십 걸음도 채 떨어지지 않은 지근거리에 위치한 나무데크 정원에서 거진 반년만에 찬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보았다. 이곳의 찬 바람과 나는 초면이다. 그 어색한 기류를 타고 하얀 솜털들이 날리고 있었다. 이내 나는 그 솜털이 흩날리는 11월의 첫눈임을 깨달았다. 볼품없이 듬성듬성 밀려다니는 첫눈을 바라보며 이곳에 첫 발을 내딛은 날을 떠올렸다.
올해 따뜻한 바람이 살랑댈 무렵 나는 그 바람에 떠밀려 여기까지 왔다.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동네에서의 새 출발. 꽃길만 걷자고 생각했다. 전공을 버리고 경력을 버리고 월급을 버리지만 과거의 아픔도 함께 버리자고 다짐했다. 이제는 드디어 안정을 찾았다고 기뻐했다. 웬만한 어려움도 금세 이겨낼 것이라는 용기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홀가분했다.
이곳의 따뜻한 바람과는 대조적이게도 이곳은 내게 쉽사리 맘을 열어주지 않았다. 직속 선배가 나를 괴롭히고 갑질을 해 대도 나는 벙벙한 어안을 숨겨야 했다. 직속 팀장이 술을 마시고 몹쓸 주정을 부릴 때 나는 분노와 치욕을 전부 감내해야 했다. 직속 임원이 나를 벼랑으로 내몰아 고립시켜도 나는 웃으며 떨어져야 했다. 쳐내지 않은 잡초처럼 웃자란 나를 주저앉히려는 가스라이팅은 그칠 줄 몰랐다. 나는 내 세상 속에서는 충분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내 세상 자체를 첫눈처럼 볼품없게 만들었다. 마치 한번 발을 들이면 끝없이 딸려 들어가는 문서 파쇄기에 엮인 것 같았다. 그렇게 내 세상은 파쇄기에서 갈기갈기 찢어져 첫눈송이처럼 작디 작은 입자가 되어 흩날렸다.
그렇게 흩어진 마음으로 지내는 요즘, 첫눈은 물론 반가웠지만 꽤 밉기도 했다. 얼마 뒤 펑펑 함박눈이 내릴 때, 오늘 이 첫눈을 몰랐던 누군가 내 곁에서 ‘와, 첫눈이 펑펑 내리네! 정말 예뻐!’라고 말하면 ‘그러게! 첫눈인데 이렇게 화려하게 오네!’ 하고 싶을 정도로. 지워버리고 싶은 볼품없는 첫눈이었다. 차라리 여기서의 첫눈을 아예 몰랐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칼날같은 바람을 에며 흩날리는 싸리눈 대신 조용히 펑펑 내리는 맘 따뜻해지는 함박눈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그동안 나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첫눈을 보고 첫눈이 아니라 우겨도 그 초라함을 마음에서 지워낼 수는 없는 것 같다. 손펌프로 물을 길어올릴 때 외려 맞물이 필요하듯, 이 미운 첫눈이 적어도 맞물이라도 되어주길 바란다. 지금은 볼품없는 첫눈일지언정 오늘의 첫눈이 곧 함박눈을 마중나갈 것이라고, 지워지지 않는 마음을 간직해 본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잘 알고 있으니 그래도 다행입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태어나 어리버리 살다가 물스미듯 사라지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요.
자신의 현 상황과 처지를 파악하고 있다면 그것이 마중물이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