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연락을 하는 방법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자(?)는 문자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문자 메시지는 한 달동안 사용 가능한 개수가 정해져 있는데다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글자수도 제한되어 있다. 그런 명백한 단점 때문에 스마트폰의 보급 극초기에 이미 다양한 메시징 앱에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 이후로 문자 메시지는 전화 수신 거부를 알리거나 스팸광고를 뿌리는 등의 보조적인 용도로만 사용되는 것 같다.
아마 아이폰 3GS가 절찬리에 판매되던 시기였던것 같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이 조악한 디자인의 카카오톡 공지에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정확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보낸 메시지 옆에 표시되는 ‘1’은 무슨 뜻인가요?
라는 뉘앙스의 글이었던 것 같다. 요즘이야 모두가 그 ‘1’의 의미를 알지만 그 당시에는 굉장히 신선한 기능으로 받아들여졌다.
기존의 문자 메시지는 일단 보내놓고 나면 상대방이 내용을 잘 받았는지, 잘 읽었는지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수신자의 답신을 마냥 기다리거나, 정말 급하다면 전화라도 해야 했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의 메시징 앱은 수신자의 열람 여부를 곧바로 알려주는 기능을 지녔다. 그 놀라운 기능은 그저 숫자로 읽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인지 표시해 주는 극히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그 때 회의에 참석했던 개발자들은 알고 있었을까? 이 쉬운 아이디어가 수십 수백만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었단 것을. 당장 구글에 읽씹vs안읽씹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349,000개의 결과가 나온다.🌏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웬만한 중규모 도시의 인구수보다 많은 숫자이다. 그 글들의 주된 내용은 읽씹과 안읽씹 중 뭐가 더 나쁜가를 비교하는 것이다.
진짜다. 349,000개.
한번 비교해 보자. 안읽씹은 내용이 뭐든 발송자에 따라 열람 여부를 선택적으로 취한다는 의미이다. 즉 특정 발송자의 톡에 한해서, 구체적인 내용에 관계없이 답장을 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수신자가 카톡에 읽지 않은 메시지 개수를 무한대로 쌓아놓을 요량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내용을 꼼꼼히 읽든 읽음처리만 하든 ‘1’을 지울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안읽씹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더 고민하지 말고 읽씹으로 넘어가보자. 읽씹하는 수신자는 일단 톡을 받았으면 내용을 읽든 읽음처리만 하든 ‘1’을 지우고 시작한다. 그 다음은 정해져 있다. 수신자는 발송자가 누군지에 따라 톡의 구체적인 내용과 관계 없이 답장하지 않는다. 순서만 바뀌었을 뿐 읽씹과 결과는 똑같다. 결국 읽씹이 나쁘냐 안읽씹이 나쁘냐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말하자면, 그냥 씹는 것이 나쁘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씹는 것이 정말 나쁜 것인가는 생각해볼만 하다. 톡 뿐만 아니라 말 자체에 답변을 하지 않는 건 당사자의 선택일 뿐이다. 그럼에도 톡을 씹은 수신자는 종종 나쁜 사람 취급된다. 그건 단지 답변을 받지 못한 발신자의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발신자는 수신자의 그런 태도에 짜증이 날 수도 있고, 화가 날 수도 있고, 아쉬울 수도 있고, 에는 것처럼 따끔거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수신자의 기분도 나쁘거나 복잡했을 수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인간관계에서 100% 가해자와 피해자는 없다. 그렇기에 인간관계의 결과가 자신의 뜻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거기에 스스로의 책임도 어느 정도는 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로 들릴 정도로,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자주 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