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있는 자유

설이 돌아왔다. 지방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인천 본가로 올라오는 주기를 이번 설에 맞추었다. 9일이나 되는 연휴동안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친척들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고, 심지어 연휴 마지막 날 결혼식까지 참석하는 대장정을 계획했다. 이런 일정을 쪼개서 주말마다 올라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 먼 지방에서 인천까지 왕복하면 거진 10만원이 넘게 들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서 가장 뼈저리게 사무치는 건, 나 자신을 먹여 살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다. 삶의 목표 첫 줄은 생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가정을 꾸린 사람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생존이라는 단편적인 목표를 확장해 가정을 일구는 사람들이 대단해보이기만 한다. 내 앞가림도 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가정을 일군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나아간다는 건, 마치 그들을 성인처럼 보이게 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가끔 흔한 망상에 빠지곤 한다. 갑자기 수십억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면 얼마나 삶이 쉬워질까. 지금 고민을 가져다주는 여러 문제가 단박에 해결될 것만 같다. 직장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어디에 집을 마련할지 고민도 덜 수 있다. 쇼핑을 가서 필요한 물건을 집었다 놨다, 가성비를 따지는 골치아픈 시간도 줄어들 것이다. 내 앞날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열릴 것만 같다.

명절 KTX표값 앞에서 고속버스를 탈까 고민하고, 닭가슴살은 노브랜드가 저렴한지 CU가 저렴한지 고민하는 내 모습이 가끔은 궁상맞은 것 아닌가 싶었다. 어떻게 하면 좀 궁상을 덜 떨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궁상떨면 좀 어때. 내가 기차표와 버스표를 비교하며 고민할 때, 나의 선택 끝에 창 밖의 풍경이 달라진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 사실을 발견하니 얼마를 가졌든 그 속에서 자유를 찾아가는 건 내 몫이란 것이 명백해졌다. 가성비를 찾으면 그대로 쏠쏠해서 좋고, 조금 비싼 걸 사면 그만큼 만족스러워서 좋다. 그러다 가끔 적금이 끝나 목돈을 타면 주식도 조금 사고, 점찍어 두었던 가구도 장만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재미 아닐까. 원하는 것이 말할 때마다 턱턱 손에 들어온다면 그야말로 ‘생존’속에서 고민과 선택이라는 자유가 박탈된 상태일 듯 싶다.

단지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이 생기면, 즉 경제적 자유를 이루면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더 추가될 뿐이다. 그러니 그 때가 오든 안 오든, 자유 속에서 선택하는 연습을 잘 해둬야겠다. 막상 갑자기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하면 선택장애가 왔다고 내빼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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