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화해

우연찮게 삶을 멀리서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감정은 반가움도 설렘도 아닌 어색함이다. 멀리서 아른거리는 매일의 무대는 오밀조밀하고 아주 작게 보인다. 거리도, 건물도, 사람도 한 눈에 쏙 들어온다. 이번에 내 눈에 들어온 풍경은 과거에 내가 살던 곳이었다.

당일치기로 수도권에 있는 병원에 다녀오던 날, 수백 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쉬지 않고 달려온 기차에서 내려 전철로 갈아탔다. 익숙한 전철의 덜컹거림이 오랜만이었다. 바깥에 보이는 풍경은 신경 쓰지 않으면 뭐가 바뀌었는지 알아채기 어려웠다. 아파트 단지가 조금 더 생겼고, 그 밖에는 뻔한 공장이나 논밭 따위와 같이 예전처럼 지루한 모습이었다.

지방에 내려왔음에도 시간과 돈을 흘려 보내며 굳이 수도권의 병원에 다니는 이유는 뻔하다. 난 새로운 터전에서 마음에 드는 병원을 찾지 못했다. 나이에 비해 여기저기 고칠 데가 많은 소위 말해 뽑기에 실패한 몸뚱아리 인지라, 정기적인 병원 치료가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불편하더라도 시간을 내서 수도권에 올라가는 것을 선택했다. 벌써 2년간 오간 길목, 처음엔 설레던 고속열차의 세련된 소음이 이제는 자장가처럼 들릴 지경이다.

나도 참, 그 때나 지금이나 고집쟁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창 밖의 석양이 반짝이는 오렌지빛으로 옛 동네를 밝혔다. 이야, 그 보잘것 없던 소도시가 이렇게 어색하리만치 예뻤나. 전철은 역에 정차하기 위해 속도를 줄였고, 느려지는 전철과 함께 늘어지는 옛 동네의 풍경 속에는 과거의 내가 어색한 얼굴로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겉보기에 매우 다르다. 몇 살 나이를 먹었고, 옅지만 눈가와 이마에 주름도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건강에 신경 쓰지 않고 살던 예전과 달리 체중의 삼 분의 일을 날려보냈고, 그 김에 옷도 예쁘게 챙겨 입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 덕인지 주변 사람들은 예전보다 오히려 어려 보인다고도 한다. 입바른 칭찬이든 아니든 간에 분명 나는 보기에 달라졌다. 난 그게 자랑스러웠다. 가끔 구글포토가 예전 사진을 추천하면 그 모습을 흑역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많이 바뀌었음에도 만족스럽지 않다. 이상했다. 난 겉이 바뀌면 속도 따라서 바뀔 거라고 넌지시 생각했. 한참 동안 쌓아 온 내면은 깊은 티눈처럼 박혀서 요지부동이었나보다. 결국 오늘 전철을 타고 있는 나는 옛 동네에 있던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임을 받아들이고 싶은데, 어렵다. 그렇게 과거와 싸워 온 나는 이제서야,

과거와 어렵게나마 화해할 생각이 든 모양이다.

Leave a Comment